2021 DMZ 아트 & 피스 플랫폼
김기혁│남북출입사무소 소장
개성공단 가는 출입사무소로 사용되던 방치된 건물이 아름다운 UniMARU로 다시 태어날 인연이 시작된 것은 10여 년 전이었다. DMZ에 머리를 베고 있으면서 심장이 뛰지 않던 오래전.
베를린 연수 중 방문한 오르세 미술관, 화려한 인상파 거장들의 명화를 느긋하게 감상하는 눈호강을 누리고 미술관 아래층으로 내려갈 때 우연히 멀리 반대쪽 벽에 걸린 커다란 시계가 내 눈에 들어오면서였다. 그 시계가 언제부터 거기 있게 되었는지, 오르세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 유명한 에펠탑이 처음에는 얼마나 파리 시민들에게 혐오의 대상이었는지, 잉글랜드 끝 게이츠헤드(Gateshead)의 <북방의 천사>는 어떻게 그 언덕에 서 있게 되었는지, 상하이의 웨스트 번드(West Bund)에 대한 부러움 등으로 이어지면서 내게 커다란 기쁨과 즐거움을 주게 된 그 여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 후 이런 일련의 예술에 대한 호기심과 무지함을 메우는 일들은 나에게는 조금은 낯선 일이었지만 나의 ‘역사 덕후’적 성향과 함께 또 하나의 행복한 ‘문화바라기’ 과정으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내가 여기 파주 도라산의 남북출입사무소에 와서 DMZ 평화통일문화공간(DMZ Art & Peace Platform) 을 만들어가는 일을 시작한 이후의 과정도 또 하나의 재생을 통한 예술공간 창출로서 즐겁고 행복한 문화바라기의 운명적 만남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DMZ가 갖는 의미는 분단과 대결의 상징, 생태계의 보고 등 다양하지만 이제는 평화통일문화공간에서 ‘아름다운 평화’로 다시 태어나려 하고 있다. DMZ 평화통일문화공간 조성사업은 2018년 판문점에서 남북정상이 합의한 ‘DMZ 평화지대화 조성’의 상징적 사업으로 2021년부터 시작되었으며, 앞으로 이 공간에서 남북이 정기적으로 모여 예술제와다양한 어울림마당을 함께 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국민에게 DMZ를 아름답고 평화로운 공간으로 만들어 되돌려 주는 역사적인 과업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이 험난한 길을 열악한 조건에서도 사명감을 갖고 열과 성을 다해 묵묵히 함께해 온 남북출입사무소 문화협력팀과 전체 직원들에게 모든 고마움과 큰 박수를 보낸다. 특히 예술감독의 자리를 기꺼이 맡아 모든 전시를 총괄하여 어둠 속에 환한 횃불을 들고 이끌어 주신 홍익대학교 정연심 교수님, 국립현대미술관에서처럼 DMZ에서도 (구)출경동을 UniMARU라는 아름다운 미술관으로 재탄생시키는 마술을 부리신 민현준 교수님, 그리고 동서지역 DMZ에 환상적인 작품 전시를 허락해 주신 존경하는 32분의 작가님들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UniMARU 중앙에 설치된 빈 프레임에 북한의 아름다운 예술작품이 채워질 그날을 고대하며...
2021 초추,
파주 장단 도라산에서